어부지리漁婦地理: 바다는 가르지 않는다

작가노트 

박유미 Park Yumi 

 

“저절로 존재하는 달과 해의 상태를 반복적으로 끈질기게 관찰하는 행위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일엔 조급함이 없다.” 

2015 <조급함이 없는 일> 작가노트 중에서

 

서울과 독일에서 서양화와 미디어아트를 전공하였고 일상의 작은 사건들을 일련의 사진과 비디오로 구성하여 2009년에 첫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현대 사회와 문화에서 드러나는 개인과 집단의 의식을 드로잉 설치로 이어나가며 특정 장소와 의식이 결합된 작업을 선보였다. 또한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경계, 지역성, 그리고 여성주의에 주목하여 2012년 민통선 내의 작은 섬 인천 아차도에서 지역 밀착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아차도를 시작으로 다양한 지역의 노년 여성의 새로운 언어와 이미지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개인의 창작 활동이 그가 속한 작은 공동체에 개입하며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예술은 개인의 자율적 삶의 양식을 반영할 때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가부장제의 억압된 환경에서 자신의 이름조차 제대로 불리지 못하는 노년 여성 대다수에게 ‘개인으로 존재하기’는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권리가 아니다. 순전히 자신의 선택과 판단으로 실질적 효용이 없는 일에 몰두하여 예상치 못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창작 활동이 낯설다 못해 죄악시되는 문화도 있다. 참여자를 프로젝트의 주체, 즉 창작자로 대하며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그들의 개별적 삶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지금까지 몰래 품고 있던 예술의 정의와 범주가 생뚱맞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더없이 생생하게 와닿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예술이 아닌 것을 구별하기보다 예술적인 것 또는 예술에 가까운 것을 발견하는 가능성을 작업의 화두로 삼았다. 나와 타인(공동체)이 맺는 관계가 이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해졌다. 나의 상식과 아름다움에 관한 감각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그 뿌리를 형성하는 사회문화 체계는 누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누구를 배제하는지에 관한 질문이 공동체 기반의 프로젝트를 지속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