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지리漁婦地理: 바다는 가르지 않는다

어부지리漁婦地理: 바다는 가르지 않는다

박유미 Park Yumi

어부(漁夫)라는 단어에 여성은 없다. 남자(夫:부)를 여자(婦:부)로 바꿔야 여성 어부가 된다. 본 전시 제목의 일부인 地理(지리) 또한 어떤 곳의 지형이나 형편을 뜻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자성어와 전혀 다른 의미의 조어로 시작하는 전시 명 <어부지리(漁婦地理): 바다는 가르지 않는다>는 젠더, 지역, 직업, 나이로 규정되고 경계 지어지는 여성의 존재를 그들의 일과 창작 활동을 통해 가시화한다.

 

아차도 어부들과 관계를 이어온 긴 시간 동안 나는 주로 그들과 나의 일에 관해 생각했다. 달과 해의 움직임에 따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곤 했다. 주민과의 첫 만남에서 나를 작가로 소개했지만, 오랫동안 작가 냄새를 빼는 일에 몰두했다. 되도록 작가다운 일은 하지 않고 주민 곁에서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주민은 처음에 내가 방송작가려니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미술작가임을 알게 되었고, 대체 왜 미술은 보이지 않는지 의아해했다.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냥 이야기 들으러 왔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알고 보면 이런 게 미술이라지만 나조차도 확신할 수 없고, 더 정확히는 아직은 나도 잘 모르기 때문에 해봐야 안다’라고 말할 수 없었기에 무거운 삼각대와 카메라를 몸에 매달고 온종일 이 사람 저 사람을 졸졸 따라다녔다. 빠지지도 않는 작가 냄새를 빼는 일은 예상보다 바쁘고 고됐다. 한량이나 간첩으로 불릴 때 잠시 억울하기도 했지만, 생면부지의 어떤 타인이 지도에도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섬의 일상에 갑자기 비집고 들어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주는 음식을 넙죽 받아먹으며 어색하게 주변을 맴돌면서 틈틈이 기록을 남기던 행동을 주민 관점에서 돌이켜보니 금세 수긍할 수 있었다.

 

거의 스물네 시간을 주민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갔다. 불현듯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내 일을 하고 있긴 한가?’ 하는 불안이 밀려왔다. 한쪽에 세워놓고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소극적으로 사용하던 카메라가 다시 보였다. 고요한 새벽에 일어나 아무 의도도 없이 마을의 움직임을 촬영하면서 숨도 제대로 못 쉴 만큼 몰입했다. 잠깐이지만 나 혼자 온전히 내 의지대로 하는 유일한 자유 활동 시간이었다. 그저 지금 내 눈에 펼쳐진 풍경을 담는 것뿐인데 비로소 내 일을 찾은 것 같은 안도감과 만족감이 밀려왔다. 밤낮없이 늘 일하는 상태인 주민 앞에서 조금 덜 부끄러운 기분도 들었다. 조금씩 커진 용기로 당신들께서 평생 하셨던 일을 잠시 멈추고 다른 일도 잠깐 해보자고 제안하고, 설득하고, 호소했다. 어느새 겁도 없이 어선도 타며 틈틈이 일손을 돕다 보니 뱃년(*뱃놈처럼 뱃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이지만 뱃사람들도 가볍게 사용함)이라 불리기도 하고 눈에 띄게 줄어든 바지락과 굴, 병어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거워졌다.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과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차도 활동이 햇수로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주민 면전에서 작가랍시고 나의 전문성을 과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주민의 창작물에 감탄하는 나를 향해 당사자들의 강한 의심과 저항이 일면 주저 없이,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미술을 하는 전문가라고 떠벌리며 제발 내 안목을 믿어달라고 애원했다. 소름이 돋을 만큼 뻔뻔하고 동시에 비굴한, 그렇지만 조금도 굽힐 줄 모르는 나의 호소에도 주민의 의심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가끔 그들의 작품을 보고 놀란 동료 작가들의 권위를 빌려 나의 말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지금은 주민과 나에게 창작이라는 접점이 생겼고 일상의 대화에 예술과 삶의 이야기가 조금씩 섞이고 있다.

 

아차도 어부들은 육지와 바다, 집과 밖을 오가며 쉴 새 없이 일한다. 어릴 때부터 노년이 된 지금까지 온갖 일에 몸담았던 그들의 노동사는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대화에, 그림에, 사진에, 글에. 그것들은 창작을 거쳐 더 정교해지거나 다시 쓰인다. 어부 개인의 역사는 젠더와 지역, 나이로 뭉뚱그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漁夫라는 단어로 자연스럽게 여성을 지우고 여성과 관련된 금기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어부(漁婦)는 닻과 그물에 연결된 꼭두줄과 배잡이줄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렁이는 뱃머리에 올라서서 먼바다와 발밑의 바다를 직접 살펴보고 정박 시 조타실 안의 선장에게 정확한 현재의 위치와 바다 상태를 알려준다. 롤러(*양망기: 그물을 걷어 올리는 기계)를 작동 시켜 바다에 잠긴 닻과 그물을 수면으로 끌어 올리며 크고 작은 모든 일을 주관한다. 

 

 

 

  * 본 전시는 두 번의 오프라인 전시 취소로 인하여 온라인 전시로 대체되었습니다. 

 

면적 0.632km2, 21가구, 35명 거주 (2021년 기준)

아차도는 인천시 강화군 서도면에 위치한 민간인 출입 통제선 지역으로 마을 회관, 교회, 주민들이 직접 만든 무인카페 외에 여타 공공시설이나 편의시설이 없는 작은 섬입니다.

전시는 인천광역시와 (재)인천문화재단의 후원을 받아 2021 문화예술육성지원 사업으로 선정되어 개최되는 사업입니다